도깨비 보니조아
2009. 8. 20. 21:41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수풀이 우거진 철로 옆 조용히 남겨진 역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영업이 중지된 간이역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창고로, 살림집으로, 사무실로, 폐가로 그 용도가 다양하게 변화한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깬 역이 생겼다.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에 위치한 옛 곡성역은 새롭게 지어진 곡성역보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 |



‘칙칙폭폭‘ 나이를 잊은 증기기관차의 질주

여름의 절정을 쏟아내고 있는 파란 하늘을 가르고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열차 소리의 대명사인 ‘칙칙폭폭’ 소리가 선로에 함께 실려 온다.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약 10km 구간을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1960년대 실제 우리나라에서 운행됐던 모습 그대로다.
‘섬진강 기차마을’로 잘 알려진 옛 곡성역은 1933년부터 1999년까지 익산과 여수를 잇는 전라선 열차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전라선 복선화 사업에 의해 철로가 옮겨지면서 1999년 곡성역은 곡성읍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옛 곡성역은 60여 년의 임무를 끝으로 폐선된 철로와 함께 철거 위기에 놓였다.
그 때 옛 곡성역의 운명을 바꾼 것이 곡성군이다.
철도청으로부터 자산을 매입해 곡성~가정 구간에 증기기관차를 운영하는 등 관광화에 나선 것이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누이와 조카 등 10여 명의 가족과 섬진강 기차여행에 나선 김경선씨는 “몇 해 전에 곡성역을 찾았다가 증기기관차의 매력에 푹 빠져서 이렇게 가족들과 다시 오게 됐다”며 흥겨움을 전했다.
순천시에서 온 정병덕(80)할머니는 “증기기관차는 처음 타 봐요.
신기하고 재미있고 좋네요”라며 열차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대도시와 연결되는 열차는 끊겼지만 곡성역은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하루 평균 1500명 이상의 승객이 찾는 인기역이 됐다. | |

기차가 지나갈 때보다 더 좋아졌어요

옛 곡성역이 위치한 곡성읍 오곡면 오지리 6구에는 40여 명의 주민이 산다.
일제시대 곡성역이 세워지면서 인근에 작은 마을이 생겨난 것이 유래다.
옛 곡성역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윤석중(58)씨는 “지금 식당 건물이 일본인이 지은 양곡 창고예요.
바로 앞집은 일본인 사무실이었고요”라며 마을 소개를 한다.
“여수, 익산으로 기차가 갈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졌죠”라며 “몇 년 전부터 증기기관차가 가정역까지 다니는데,
하루에도 몇 천 명씩 사람이 와요”라고 자랑한다.
근처 고달면에 사는 임채지, 정애님 부부는 “곡성역이 없어질 당시 고현석 곡성 군수가 잘 대처 했지.
철거될 뻔한 곡성역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라고 말한다.
옛 곡성역에 증기기관차가 다니면서 혜택을 보는 것은 오지리뿐만이 아니다.
열차가 머무는 가정역 인근에는 효 테마파크 ‘심청 이야기마을’이 들어섰다.
심청 이야기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 원홍장의 고향이 전남 곡성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섬진강, 17번 국도, 철로가 나란히 달리는 10km의 길을 따라 은어, 참게 등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섬진강 래프팅, 레일 바이크 등은 섬진강 기차마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즐길거리다. | |
기차역의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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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을 시작할 때 곡성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차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33년 지어진 옛 곡성역은 역사적 가치가 인정돼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맞배지붕을 멋스럽게 드러낸 역사와 수화물창고는 영화촬영 때문에 조금 손을 본 것 외에는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드라마 <경성스캔들> 등의 촬영장으로 쓰여 역 주변에 1960년대를 재현한 세트장이 고스란히 남았다.
새롭게 지어진 곡성역은 옛 역사에서 약 7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큰 역은 아니지만 새마을호 왕복8회, 무궁화호 왕복26회로 하루 총 34회 열차가 다녀 주민의 발이 돼주고 있다.
곡성역 김희수 역장은 “하루 평균 역 이용객은 250명 정도”라며 “옛 곡성역을 찾기 위해 일부러 기차를 타고 오는 승객도 꽤 된다”라고 말한다.
새롭게 역이 들어선 곡성읍은 옛 역사와 연계할 수 있는 문화 체험 코스를 계획 중에 있다. | |
곡성읍 선종철 읍장은 “곡성역에서 섬진강 기차마을까지 자전거 도로를 만들 생각”이라며 “현재 5일장을 주말에 서도록 해 곡성의 특산품을 더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역 주변 상점 간판은 깔끔하게 정비됐고 길 위에는 전봇대가 사라졌다.
곡성역에서 섬진강 기차마을까지 걸어가는 길은 점점 더 예쁘게 변할 것이다.
섬진강 증기기관차의 뚜우뚜우 기적 소리가 울리는 마을. 곡성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실은 증기기관차는 오늘도 옛 곡성역을 출발해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섬진강을 따라 달리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