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농심이 꾸민 "흑두루미 낙원
ㆍ영농단 33명 논에 물 가두고 먹이 제공
ㆍ개체수 40% 늘어… 소득·관광수입 ‘호황’
겨울 추위가 시작된 13일 오후, 전남 순천시 도사동 순천만 자연생태관 앞 안풍들.

13일 정오 전남 순천시 도사동 순천만 자연생태관 앞 안풍들에서 흑두루미떼가 고즈넉한 점심을 즐기고 있다. 순천 | 나영석기자
농부 10여명이 자루에 담긴 벼 알곡을 논바닥에 뿌려주며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를 부르고 있었다.
농부들의 손짓에 1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내려앉았다.
모이를 배불리 먹은 이들이 떠나자 곧바로 오리떼가 날아들어 남아 있는 알곡을 치워 버렸다.
배불리 먹은 흑두루미들은 이 사이 인근 무논(물을 가두어 둔 논)으로 자리를 옮겨 퍼드덕거리며 목욕을 즐겼다.
무논은 농부들이 마련해놓은 흑두루미의 전용 목욕탕이다.
주말을 맞아 순천만을 찾은 관광객들은 인접 순천만 철새 탐조대와 평지 천문대 등에서 흑두루미의 군무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즐거워했다.
농한기에 순천만 일대를 누비고 농번기보다 더 바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농민들은 순천만 흑두리영농단(단장 정종태·61) 단원들이다.
순천만 인접 농민들이 주축인 이들이 흑두루미 사랑에 빠져든 것은 순천시가 추진한 ‘경관농업’에 참여하면서부터. 지난 2월 경관농업에 참여한 86개 농가 가운데 흑두루미 사랑이 남다른 33명이 참여해 출범했다.
이들은 올해 59만 여㎡의 논에 친환경 농법으로 벼 농사를 지었다.
순천시는 참여농가들에게 추곡수매가보다 10% 정도 높은 가격(1000㎡당 96만원)을 주었다.
시가 올해 경관농업에 참여한 86농가에 지급한 돈은 5억6000만원 정도. 참여농가들은 대신 수확한 알곡을 모두 창고에 보관해 두루미를 비롯한 겨울철새 먹이로 주고 있다.
이들이 주는 먹이는 매일 400㎏ 정도.
최근에는 참여농가들이 논에 흑두루미 한 쌍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해 놓았다.
논을 장식한 흑두루미 형상이 차지한 면적만도 7만여㎡나 된다.
또한 순천시와 공동으로 1㏊ 규모의 무논을 조성, 흑두루미용 전용목욕탕을 만들기도 했다.
밀렵이나 차량 소음, 행인 등으로부터 흑두루미를 보호하는 활동도 펼친다.
정종태 단장은 “이제는 마치 가족처럼 정이 들어 무리가 줄거나 보이지 않으면 걱정된다”며 “흑두루미는 농민과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순천만을 흑두루미 낙원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게 이들의 포부. 이들의 보살핌에 힘입어 올 겨울 들어 순천만에는 지난해보다 40%가량 많은 35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아들어 군무를 펼치고 있다.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겨울인데도 지난 12일 1만5000여명이 찾는 등 주말이면 2만여명의 관광객이 순천만 일대를 찾고 있다.
주변 음식점들도 때 아닌 ‘겨울 호황’을 맞고 있다.
관광객 최모씨(56·대전시 중구)는 “다른 곳과 달리 철새와 주민이 상생하는 모습을 보니 단순한 철새 관광지 이상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순천시 박상순 관광진흥과장은 “순천만 흑두루미는 갈대·갯벌 등과 함께 순천만을 대표하는 3대 관광자원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밝혔다.
물론 흑두루미들에게 인위적으로 먹이를 마련해 주는 데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순천시 관계자는 “먹이는 흑두루미가 다음 번식지로 옮겨갈 때까지, 즉 11월 말~이듬해 2월까지만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새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순천에서 월동한 뒤 다음 번식지로 이동하여 영양결핍 등으로 알을 낳거나 새끼를 기르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먹이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철새 보호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