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좋은 글

이런 아내(남편)이 되겠습니다.

도깨비 보니조아 2005. 11. 4. 11:29

 

이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눈이 오는 한 겨울에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당신의 퇴근 무렵에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 사들고
당신이 내리는 지하철역에서 서 있겠습니다.
당신이 돌아와 육체와 영혼이 쉴 수 있도록
향내 나는 그런 집으로 만들겠습니다.
때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로,
때로는 만개한 소국의 향기로,
때로는 진한 향수의 향기로
당신이 늦게까지 불 켜놓고 당신의 방에서 책을 볼 때
나는 살며시 사랑을 담아 레몬 넣은 홍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서운한 맘 편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늘 사랑해서 미칠 것 같은 아내가 아니라
아주 필요한 사람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공기 같은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행여 내가 세상에 당신을 남겨두고 멀리 떠나는 일이 있어도
가슴 한 구석에 많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그런 현명한 아내가 되겠습니다.
지혜와 슬기로 당신의 앞길에
아주 밝은 한줄기의 등대 같은 불빛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호롱불처럼 아님 반딧불처럼
당신의 가는 길에 빛을 드리울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흰 서리 내린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당신은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소
당신을 만나 작지만 행복했었소
하는 말을 듣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이런 남편이 되겠습니다.

눈부신 벚꽃 흩날리는
노곤한 봄날 저녁이 어스름 몰려 올 때쯤
퇴근길에 안개꽃 한 무더기와
수줍게 핀 장미 한 송이를 준비하겠습니다.
날 기다려주는 우리들의 집이
웃음이 묻어나는 그런 집으로 만들겠습니다.
때로는 소녀처럼
수줍게 입 가리고 웃는 당신의 호호 웃음으로
때로는 세상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사랑의 결실이 웃는 까르륵 웃음으로
피곤함에 지쳐서 당신이 걷지 못한 빨래가
그대 향한 그리움처럼 펄럭대는 오후
곤히 잠든 당신의 방문을 살며시 닫고
당신의 속옷과 양말을 정돈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때로 구멍 난 당신의 양말을 보며
가슴 뻥 뚫린 듯한 당신의 사랑에
부끄런 눈물도 한 방울 흘리겠습니다.
능력과 재력으로 당신에게 군림하는 남자가 아니라
당신의 가장 든든한 쉼터 한그루 나무가 되겠습니다.
여름이면 그늘을,
가을이면 과일을 ,
겨울이면 당신 몸 녹여줄 장작이 되겠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봄,
나는 당신에게 기꺼이
나의 그루터기를 내어 주겠습니다.
날이 하얗게 새도록 당신을 내 품에 묻고
하나 둘 돋아난 시린 당신의 흰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당신의 머리를 내 팔에 누이고 꼬옥 안아 주겠습니다.
휴가를 내서라도 당신의 부모님을 모셔다가
당신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는걸 보렵니다.
그런 남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