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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치섬 (작약도)

도깨비 보니조아 2009. 6. 10. 12:37

 

 

작약도(물치섬)

시원한 바닷바람, 솔솔(松松)바람 맞으려 작약도에 가자

행정구역상 동구 만석동 산3번지에 위치한 작약도.면적은 7만2천9백 평방미터이며 섬둘레는 1.2킬로미터다.

인천 월미도 서북방 약 2.4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배편으로 20분이면 다달을 수 있는 섬. 동구지역에 속한 섬이지만 아쉽게도 동구에서는 갈 수가 없다. 
 지금은 월미도에서 오전 10시 4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작약도행 배가 떠난다.
작약도의 자연환경을 보면, 작약도는 내륙에 인접한 섬이라서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기상변화가 다소 심한편이다.
기온은 중부내륙지방보다 다소 높은 편이나 평균기온차가 심한 것이 특징. 지형은 표고 50미터 정도의 산세가 약한 구릉지이고 바다와 접하는 곳은 급경사 절개지를 있다.
조수간만차가 심해 이용가능한 부지는 적지만 섬 안쪽에는 완만한 지형형태를 이루고 있다.
식생은 소나무류와 잡종림이지만 해송이 양호한 상태로 분포되어 있다.

수종은 비록 빈약하지만 양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양호한 임상으로 내부경관과 섬 전체가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산정을 비롯한 일부 시선이 확산되어 작약도 특유의 개방감과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다.
아울러 서남쪽은 자연 암석들이 산재하여 천혜의 볼거리도 제공한다.

작약도의 역사를 살펴보자.
1999년 인하대학교에서 발간한 "인천지역 유적.유물 지명표"에 의하면 '만석동 작약도에는 선사시대 조개더미와 함께 그곳에서 석기와 빗살무늬토기 및 돌화촉이 출토되었으나 소장처는 불분명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영종진(永宗鎭)에 땔나무를 공급하였던 수목지가 되기도 했다.
또 광복후 화수동에 사는 이종문 이라는 사람이 작약도에 고아원을 설치 운영하다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없어졌다.
이후 적산처리를 통해 개인소유가 되었으나 지금은 서해해상(일부는 국유지)에서 인수, 유원지로 이용되고 있다.
작약도의 원래 이름은 작약도가 아니다.

그럼 호적상 본명이 뭔가. "물치섬"이다.

작약도는 월미도 북서쪽, 강화와 김포사이의 염하(鹽河)와 인천앞바다를 잇는 해수로(海水路)상에 위치한 섬이라서 조수간만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섬에 받힌다'는 의미로 물치섬(勿淄島)이라 불러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례는 경남 양산군 물금(勿禁)면을 비롯,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의 물금당마을 등이 있다.
특히 작약도는 1893년에 편찬된 '청구도'를 비롯하여 '대동지지', '대동여지도', '동지도', '경기고지도첩' 등에는 '물치(勿淄)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1919년에 제작된 1:50,000지형도(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일제때 발행된 '인천부사'에는 '작약도'라 표기되어 있다.
'작약도'란 이름이 생기게 된 배경은, 일본인 화가가 섬을 사들인 후에 이 섬의 형태가 마치 '작약꽃 봉우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임의대로 '작약도'라 이름붙인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는 지명에 고스란히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섬 정상에 올라가 보면 작약도 무인등대앞에 '무치섬등대'라는 자그만 표지석이 남아있어, 섬의 원래 이름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1866년 병인양요때는 작약도에 정박했던 프랑스함대가 그들의 군함 이름중의 하나를 따서 '보아지섬'이라 했고, 1871년 신미양요때는 미국함대는 섬에 나무가 많다고 하여 '우디아일랜드'라 부르기도 했다

작약도의 백미는 뭐니 뭐니해도 푸른 바다를 보고 시원한 바닷바람이다.
또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섬 일주 산책도 재미있는 추억여행.
그리고 작약도에 가서 꼭 빠트릴수 없는 것은 작약도 산정에 있는 무인등대앞 '무치섬등대' 표지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작약도란 이름이 널리 불려지고 있을 무렵인, 광복후에 세워진(1949년)듯한 이 표지석은 '작약도등대' 대신 왜 '무치섬등대'라고 했을까.
일본인이 위세를 부려 지은 이름을 버리고 원래 우리이름을 찾아주려 했던 작은 애국이,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요즈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약도에 가서 참(眞)애국을 배우자,
'일본에 대한 막연한 분노의 감정'을 이젠 추수리고 정말 '일본을 이길 수 있는 냉정한 정신적 힘'을 기를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여행수첩
교통편
인천 각지역에서 월미도행 시내버스(2번, 15번, 23번, 45번 등)를 이용한다
경인전철 이용시는 인천역에서 하차 -> 월미도행 시내버스(2번, 15번, 23번, 45번)를 이용한다
배는 오전 10시 4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소요시간: 20분)
  ※ 요금은 왕복 요금으로 대인이 7천원 소인이 4천원이다.(문의전화 : 보성해운  762-8880)
먹거리(식당 및 매점)
작약도(832-8805 , 011-300-5647) 
  ※ 메뉴 : 활어회, 매운탕, 해물칼국수, 해물파전 등
숙박시설 : 현재 운영하지 않으며 수리 계획 중

 

 

 

작약도는 연안부두에서 5Km, 월미도에서 3Km 거리에 있는 섬이다.

뱃길 20분이면 족하다.

바삐 살아가면서 먼 섬으로 여행가는 일에 부담 갖는 도시민들이라면 이 섬으로 위안 받을 수 있을 터.

가방 하나 들쳐 매고 간식 정도만 마련해 훌쩍 떠났다 당일 되돌아 올 수 있는 안성맞춤형 섬이다.

 

작약도는 인천시 만석동 북서쪽에 위치한 앙증맞게 생긴 무인도이다.

2만평 규모에 섬 둘레가 고작 1.5km. 그러나 작은 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대숲이 꽉 들어차 있다.

이 숲에서 여름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는 가히 장관이다.

“맴맴 맴맴 매애~앰” 하고 그치는 순간에 다시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받아친다. 파도소리 스러지는가 싶으면 다시 매미 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따금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숲 속의 오솔길과 해안산책로 따라

 

 

숲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가다 보면 산책로가 이어진다.

승용차는 가져갈 수가 없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리어카. 리어카처럼 천천히 사는 문화를 배워볼 수 있는 섬.

적당히 싣고 허리춤에 바짝 당겨 끌고 가는 리어카 문화는 자연과 동행하며 분수를 지키고 만족할 줄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작약도라는 섬의 유래는 작약이 많이 자생했다 해서 불렀다는 설과 일제 때 일본 화가가 이 섬을 사들이면서 작약 봉우리를 닮았다 해서 불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발행한 도서총람에는 본디 이름이 ‘물치섬’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 뜻이다.


 

 

실제 지도를 펴놓고 보면 작약도는 영종도와 인천시 좁은 사이에 끼여 있다.

그러니 운명적으로 해풍과 조류를 견디며 서 있었을 작약도.

거센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온몸으로 짠물을 받아치면서 견뎌 왔을 작약도 옆구리에 팔베개를 하고 바라볼수록 참으로 운명적인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에 씻기고 풍랑에 밀리면서 해안절벽이 깎아져 내렸을 섬.

그렇게 해식애가 발달한 갯바위에서 오징어에 캔 맥주를 마시며 그 뒤안길을 생각할수록 절묘하게도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파도와 싸우며 뱃길의 길잡이가 되어

 

 

그렇게 짜디짠 생을 살아온 작약도는 해방이 되면서 미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인 이종문씨가 이곳에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6.25 전쟁으로 폐쇄되었고 광복 후 적산처리를 통해 개인소유로 되었던 섬은 현재 일부는 국유지, 일부는 개인소유로 돼 있다.

 

여름철에는 송도, 팔미도와 함께 작은 섬으로서 경관 좋은 피서지로 사랑 받고 있다. 갯벌에 절인 듯한 검은 조약돌이 해변을 이루어 그 신비스러움을 더해준다.

썰물 때 이 광경은 독특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밀물 때 갯바위에서 낚시 할 수 있고 썰물 때 조개를 잡을 수도 있다.

인천시와 가까워 이 지역 청소년들의 해양탐구 현장 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해발 57m에 불과한 낮고 작은 섬이지만 가족들과 돗자리 펴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산림이 울창하다.

신미양요 때 미군들은 나무가 많다고 해서 ‘목도’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섬 정상에 딱 버티고 선 게 이름하여 작약도 무인등대. 이 등대는 해방 후에 우리 나라에 설치된 첫 등대이다.

인천항과 주변 섬의 길목으로써 어부들의 등불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금도 영종도 국제공항과 인천 국제항의 길잡이로서 한결같이 희망의 불빛을 밝혀주고 있다.
 

 

암초 많은 바닷길 밝혀주는 무인도의 무인등대
 

철공소에서 산소 용접 때 순간적인 불꽃을 틔기는 그런 원리를 이용한 소위 아세치렌 전등으로 1949년 7월에 첫 불을 밝혔다.

당시 등대 이름은 무치성 등대.

작약도의 원래 이름이 ‘몰치섬’이었으니 여기서 유래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2년 12월에 20미터 높이 콘크리트 등탑에 태양전지를 이용하며 새롭게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등대가 밝힌 불빛은 지리적으로 20마일까지 가 닿는다.

암초가 많은 이 일대 항해 선박들에게 작약도 등대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

거기에 조류마저 심해 어부들은 물론 여객선과 화물선의 눈으로 365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제 혼자 힘으로 불 밝혀 수많은 사람의 안전과 수출 역군으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

 

이 등대 아래서 바다를 바라보면 숲 사이로 빼꼼하게 드러난 푸른 물결 위에 오고 가는 배들과 갈매기 떼들을 구경할 수 있다.

쉼 없이 푸른 하늘에 연기를 뱉어내는 인천공단의 색색의 굴뚝 모양도 나름대로의 색채를 드러내준다.

여공들의 눈빛과 손길로 분주히 움직이며 약동하는 산업현장의 일꾼들 모습까지 그려보게 하는 사색의 공간인 셈이다.

영종도로 드나드는 여객선, 그리고 인천공항을 오고 가는 비행기까지 이 섬은 한국의 역동적인 물살을 바다와 하늘에서 처 올리고 보내는 길목에 서 있다.

 

 

파도와 싸우며 버터 온 ‘몰치섬’의 원래 이름 되찾아야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치고는 맑은 숲의 공기와 갯바람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꼬마섬 작약도.

무인도이지만 주말이면 해안가 횟집들이 문을 연다.

해안 산책은 30분 정도면 다 돌아 볼 수 있는데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이 운행되고 있고  월미도에서도 유람선이 운항중이다.

 

작약도는 2006년에 역사전시관과 심신단련장이 들어선 테마섬으로 거듭난다.

월미도와 자유공원을 포함한 인천의 국제적 문화공간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 때는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몰치섬으로 그 이름을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미니상식| ‘해식애’에 대하여

파도가 섬 기슭에 부딪쳐 침식하면서 생긴 급경사 절벽을 말한다. 쉴새없이 물보라치면서 섬은 계속 깎이고 후퇴를 거듭한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듯 부서지는 파도가 거대한 섬을 서서히 밀어낸다.

이렇게 톱니 모양의 심한 굴곡의 해안을 리아스식해안이라고 부른다.

 

폭풍우가 칠 때 그 강도는 거세어진다. 일반적으로 암석해안에서 잘 나타난다.

이렇게 침식되어 섬 쪽이 조금씩 들어간 모습을 ‘파식대’라고 부른다.

섬 기슭 암석이 강하고 무른 정도에 따라 바다에 돌출하거나 바다로 나가떨어지는데 이것이 바위이고 바위섬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바위섬이 추암이나 홍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촛대바위이다. 전문용어로 시스택(sea stack)이라고 부른다. 해식애에 파도가 계속 부딪치면 해식동굴이 된다.

동굴 아래 작은 돌들이 쌓여 있는데 이는 거친 파도와 폭풍우에 침식된 바윗돌 조각들이다.

 

해식애가 잘 발달한 곳은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절벽 위에는 등대가 있다.

등대가 있는 곳은 그래서 경치가 아름답다.

울릉도, 흑산도, 홍도, 고성 해금강, 양양 낙산사, 태종대 영도등대 주변이 대표적인 곳이다.

 

● 작약도 가는 길 

연안부두=>작약도(20분 소요)/월미도=> 작약도(유람선 경유)

인천시 만석동사무소(032-760-9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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